우리동네옛이야기
강서구 가양동
중전마님
2019. 6. 23. 11:15
1914년 가마동과 고양리 합쳐 생긴 지명
'공암(孔岩)에 옛 뜻 많으나
탑 하나만 아득하구나
아래에 창랑수(滄浪水) 있으니
고기잡이 노래 저녁 그림자 속에 잠긴다.'
조선시대 시인 사천 이병연이 남긴 시 '공암층탑(孔岩層塔)'이다.
사천과 절친했던 겸재 정선은 이 시에 등장하는 한강(창랑수)변의
모습을 바위 셋이 등장하는 그림으로 남겼다.
바로 강서구 가양동(加陽洞) 탑산(塔山) 부근 풍경이다.
가양동은 조선시대 양천현(陽川縣)의 중심이었다.
지금의 궁산(宮山) 남쪽에 양천현아(縣衙)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양'이란 지명은 일제시대인 1914년 생겼는데,
인근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인 가마동(加麻洞) 과 고양리(古陽里)에서 한 글자씩 떼서 합쳤다.
겸재는 1740년 양천현령(縣令)으로 부임해 현아 뒤편 궁산에 매일같이 올랐고,
5년 동안 인근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이 쓴 '겸재의 한양진경' 등을 보면 당시 일화가 여럿 나온다.
탑산 아래엔 유면한 바위가 둘 있어 '허가(許家)바위' '광주(廣州)바위'라 하는데,
모두 공암이라 불린 기록이 있다. 허가바위 밑부분에는 굴 같은 공간이 있는데,
양천 허씨의 시조인 허선문(許宣文)이 여기서 나왔다는 전설이 있다.
'동의보감'을 쓴 명의(名醫) 구암 허준이 그의 자손으로,
지금도 인근에 허준기년관, 구암근린공원등이 있어
그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김진명 기자)
2009년 11월 9일 조선일보 (A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