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女子 프로골퍼 1호' 구옥희
대한민국 女子 프로골퍼 1호' 구옥희
통산 44승..... 한국 여자골프 1세대 神話가 지다
지난 10일 日서 심장마비로 숨져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미국여자 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우승했던 구옥희(57) 전(前)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회장이 10일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는 "구 전회장이 일본 시즈오카현의 한 골프장 숙소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며 "고인이 국내로 운구되는 대로 장례 일정을 결정하겠다"고 11일 밝혔다. 고 11일 밝혔다. 현지 골프장에 머물던 구전회장은 숨진 당일은 몸이 좋지 않아 라운드를 하지 않았으며 오후 4시경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와 일본 인터넷 사이트에는 "구옥희가 없었다면 박세리와 신지애, 박인비도 없었을 것", "한국 여자골프의 큰 별이 지다" 등 추모의 글이 이어졌다. 구 전 회장은 한국 여자골프의 개척자였다. 1978년 5월 여자프로골프 1기생으로 대한민국 최초 여자프로골퍼가 됐고, 1984년 일본투어에 진출해 한국 선수 첫 우승을 이뤘다. 1985년에는 미 LPGA 투어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해 1988년 스탠더드 레지스터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가 거둔 통산 44승에는 한국 여자프로골프 20승, 일본 여자골프23승, 미국 여자프로골프 1승이 포함돼 있다. 경기도 연천군 출신인 구 전 회장은 1975년 고양시의 한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한 것이 인연이 돼 골퍼의 길을 걷게 됐다. 학창 시절 투포환 선수로 뛰었던 그녀는 어깨너머로 배운 '독학(獨學) 골퍼' 였지만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978년 처음 실시된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여자부 프로테스트를 통해 강춘자, 안종현, 한명현 등과 함께 한국 여자프로골퍼 1호가 됐다.손님에게 빌린 골프채를 들고 발에 맞지 않는 골프화를 빌려 신은 채 나간 데스트였다. 구 전 회장은 1979년 쾌남오픈에 서 첫 우승을 차지했고, 1980년에는 국내에서 열린 5개 대회를 모두 우승했다. 매년 국내 대회를 모두 우승했다. 매년 국내 대회를 휩쓸다시피하는 일인자였지만 상금은 보잘것없었다. 그녀는 "노력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다"며 1984년 일본 투어에 진출했다. 일본에서 23승을 거둔 구옥희의 승전보는 한국 골프의 주요 뉴스였고, 많은 선수의 해외 진출을 자극했다. 당시 일본의 대표적인 여자골퍼였던 오카모토아야코는 "구옥희는 남성처럼 다이내믹한 파워골프를 하면서 동시에 무서운 집념을 갖고 경기에 임한다" 고 평했다. 그녀는 1988년 3월 미 LPGA 투어스탠더드 레지스터 대회에서 우승하며 10년 뒤 시작될 'LPGA의 코리안파워'를 예고했다. 2011년 최나연이 한국(계) 선수로 LPGA 투어 100승째를 기록했을 때, 구 전회장은"제가 한국 여자골프의 첫발을 뗐고, 박세리가 한국 여자골프의 인상을 바꿔 놓았다"며 "앞으로도 후배들이 더 많은 기록을 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었다. 한국과 일본, 미국에서 1승 이상씩을 거둔 최초의 한국 녀자프로 선수였던 그녀는 2004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명예의 전당에 1호로 헌액됐다. 1994년부터 2010년까지 KLPGA 제11대 회장직을 맡았다. 그녀는 최근까지도 시니어 프로 대회에 출전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그녀는 "골프장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었다.(민학수기자)
조선일보 2013년7월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