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 좀머'씨에 대한 생각
김황식의 풍경이 있는 세상
'테오 좀머'씨에 대한 생각
신문에 난 외국인의 부음 기사를 보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독일 언론인 테오 좀머(Theo Sommer)씨입니다. 11월 초 베를린 에서 열리는 한독포럼에서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만 허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독일의 유명 시사 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 의 정치부 기자, 편집장과 공동 발행인을 거치며 외교 안보 등 국제 관계를 천착하여 취재 및 저술 활동을 했던 독일 언론계의 저목입니다. 그가 발행인이었을 때 공동발행인이 독일 총리를 지낸 헬무트 슈미트였습니다. 존경받는 대정치가와 대기자가 이끄는 '디 차이트' 가 얼마나 품격 있고 영향력 있는 신문이었을까 생각하면 부럽습니다. 그는 튀빙겐 대학에서 '1935년과 1940년 사이의 독일과 일본 관계'를 연구허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만큼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컸습니다. 특히 한국에 각별한 관시과 애정을 갖고 2002년 시작된 한독포럼의 독일 측 의장을 맡아 지금까지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한독포럼은 2002년 6월 29일 서울에서 요하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과 이한동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데오 좀머 대기자와 최정호 교수가 공동으로 사회를 보며 발족하였습니다. 포롬은 양국 전문가들이 매년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정치, 외교, 안보, 교육, 문화, 보건, 복지 등 다양한 분야의 현안을 토의하고 그 성과를 정리해서 양국 정부에 건의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저는 2016년부터 포럼에 참석하였는데 그때 테오 좀머씨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는 18년이나 나이가 많으면서도 마치 오랜 친구처럼 대해주는 참 따뜻한 분이었습니다. 포럼은 양국의 기조 발제자가 지난 1년간 자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현실을 분석하여 소개하고 전망을 내놓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독일 측 기조 발제는 테오좀머씨 몫이었습니다. 그의 간명하고 요령 있는 발표에서 언론인의 실무적 감각과 경험에서 우러나는 지혜를 배웠고, 저도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현실등을 독일 참가자에게 소개하였습니다. 막간에 그와 나누는 대화는 현자와 한 대화로 참 유익하였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그를 만나는 것이 제 포럼 참가의 작은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1월 베를린행 발걸음이 조금은 허전할 것 같습니다. 그의 사상적 배경은 사회자유주의로서 합리적 진보였습니다. 그렇기에 사민당 출신 헬무트 슈미트 총리가 국방 장관이었을 때 국방부 기획 부서에서, 그리고 '디 차이트'에서도 공동 발행인으로 함께 일했습니다. 그러나 결코 진영에 흽쓸리지 않고 언론인으로서 객관적 자세를 유지하였습니다. 독일 통일을 이룩한 우파 기민당 출신 헬무트 콜 총리에 대한 평가가 이를 말해줍니다. 그는 2014년 중앙일보 김영희 대기자와 인터뷰에서 "나는 콜 총리의 팬은 아니지만 그가 통일을 위해 내린 결단을 지지합니다. 비스마르크가 '신이 역사 속을 지나갈 때 그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는 것이 정치가의 임무다' 라고 한 말이 있어요. 콜은 그 말 그대로 눈 앞에 전개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변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통일 정책을 밀어붙였어요. 일부에선 통일을 서두르지 말고 몇 년 과도기를 두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콜은 듣지 않았어요. 그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역사학도로서 나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인 개인의 힘을 믿습니다. 그러나 어떤 정치인이 비범한지 평범한지는 역사적 순간이 닥쳐오기 전에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콜 총리 역시 독일 통일의 기회가 닥치기 전인 재임 초기엔 평범하고 감동을 주지 못한 정치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통일의 기회를 확실히 붙잡았고 그 후에는 아무도 그의 역량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덧 붙였습니다. 자기와 다른 진영 정치인에 대한 최대한의 참사였습니다. 그는 분명 훌륭한 언론인이었습니다. (전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