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70년...물건의 추억

60년대 최고층 건물 '소방 망루' 한밤 뺑소니車 발견해 붙잡기도

중전마님 2023. 5. 22. 16:43

 

60년대 최고층 건물 '소방 망루'

한밤 뺑소니車 발견해 붙잡기도

 

1965년 10월23일 밤  11시 서울 용두동을 달리던 버스가 자전거 탄 사람을 치어 숨지게 하고는 그대로 달아났다. 야간 통금 시작 한시간 전이라 거리엔 인적이 없어 아무도 못 본 듯했지만 아니었다. 부근 소방서에 우뚝  솟은 화재 감시용 망루(망루)에서 근무 중이던 소방관이 사고를 목격하고는 택시를 타고 추격한 끝에 운전사를 붙잡았다.(조선일보 1965년 10월24일자) 도시 곳곳에 높다란 망루가 세워져 있던 시대의 일화다. 

소방 망루는 1930년대부터 이 당에 등장했다. 높이 30m 안팎이었지만 당시로선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1935년 7월 태평로에 세워진 조선일보사 5층 사옥이 '최고층 빌딩'이었던 시절이었다. 수학여행 온 지방 학생들은 망루에 올라 발을 후들후들 떨었다. 망우 근무자는 시민들이 발 뻗고 잘 수 있도록 뜬 눈으로 밤을 지킨 최일선의 소방 전사였다. 1960년 조선일보는 서울 세종로 네거리 망루를 9년째 등대지기처럼 지키며

'망루에 청춘을 바친' 소방관을 소개했다. 근무 시간은 오전9시에서 다음 날 9시까지  24시간.

1분마다 세 바뀌씩 동서남북으로 돌며 불길이 솟는지 감시한다. 아무리 추워도 졸음이 올까  봐 난로는 못 피웠다. 안 보는지 확인 하려는 전등이 불시에 반짝 들어오면 지체 없이 전화를 해야 한다. 한여름 밤 어떤 망루 근무자는 가정집 마당에서 목욕하는 아낙네를 훔쳐보는 재미에 졸음을 물리치기도 했다. 소설가 김훈은 6.25 전쟁 후 '세상이 통째로 뿌리 뽑혀서 어디론가 떠내려가고 있는 듯한 불안감'이 들었던 유년 시절 마을 어귀에 솟은 소방서 망루를 올려다본 기억을 글로 남겼다. 그는 '아 저렇게 높은 망루위에서 소방관 아저씨가 우리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살피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은 따뜻하고도 눈물겨웠다고 했다. 30여년간 화재 발견의 결정적 역할을 했던 망루는1960년대 말 부터 무용지물이 되어 갔다. 늘어가는 고층 건물 때문에 망루에선 500m 앞도잘 안보였다. 1971년 서울 시내엔 망루보다 높은 11층이상 건물 이 98동이나 됐다. 한 해 1200여건의 화재 중 망루에서 발견한 건 1%뿐이었다. 불이 나자마자 119전화가 울리는 시대에 망루는 하나씩 철거됐다. 

서울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충무로 119 안전센터의 망루도 2011년 1월 철거됐다. 오늘날 높은 곳에서 사고 발생을 감시하는 망루란 여름철 해수욕장 망루가 거의 유일한 듯하다. 해수욕장 망루에도 119구조대원들이 근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