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앨범, 신붓감 발탁 자료 된다"
"졸업 앨범, 신붓감 발탁 자료 된다"
일부 여대생 수백만원 들여 촬영
1988년 겨울, 여고생들을 일본 술집 접대부로 팔아넘기다가 구속된 인신매매 조직이 '대상자' 를 물색한 방법이 기발했다. 범인들이 뒤진 건 서울, 경기 지역 7개 여고의 졸업 앨범이었다. '사진 면접'을 통해 얼굴이 예쁜 450여명을 골라낸 뒤 "아르바이트하며 일본 유학할 수 있다"는 편지로 미끼를 던졌다.(조선일보1988년 12월17일자) 학창시절 추억을 간직하려고 만든 옛 졸업 앨범들을 너무 많은 외부인이 엉뚱한 목적으로 '이용'했다. 앨범에 실린 전교생 연락처를 전화 마케팅에 쓰려는 사람들은 졸업식장이나 인쇄소에까지 사람을 보내 졸업 앨범을 사들였다. 특히 많은 시선을 받은 건 여대 졸업 앨범이었다. 1970년대 일부 기업 경영주가 신입 여비서의 모교 졸업 앨범을 뒤적이며 아들의 신붓감을 물색했다는 이야기가 신문에도 실려 있다. 1990년대엔 속칭 '마담뚜' 들이 일등 신랑감에게 소개해 줄 신붓감을 찾으려고 여대 졸업 앨범을 들여다본다는 말이 파다했다. 실제로 상당수 여대생은 그런 말을 의식하고 앨범 사진을 예쁘게 찍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4-5월 사진 촬영이 시작되기 전부터 다이어트 하고 코를 높이고 턱을 깎는 학생도 있었다. 촬영 대목을 맞은 대학가의 한 미용실은 '졸업사진 한 장이 당시느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광고를 내걸었다. 1997년 어느 여대생은 머리 손질과 화장, 의상 대여료 등을 포함해 졸업 앨범 사진 촬영 비용으로 150만원을 들였다고 밝혔다. 오늘의 물가로 300만원쯤 되니, 결혼 앞둔 웨딩 촬영을 능가하는 호화판이었다.(경향신문 1997년 2월24일자) 1991년 11월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가 한국의 과소비 풍조를 다룬 기사에 고급스러운 정장 차림으로 학교에 나온 여대생들 사진을 곁들이고 '돈의 노예' 라는 설명을 붙였다가 해당 학생들로부터 제소당한 일이 있었다. 그 여대생들은 졸업 앨범 사진을 찍으려고 최대한 꾸미고 나온 것이었다. '뉴스위크'는 툭별한 하루를 위해 차려입은 옷을 평상시 복장으로 오인해 일을 그르쳤다. '졸업 앨범이 맞선 사진이 될지모른다'며 일부 여대생이 공들여 촬영하는 상황은 2000년대에도 이어졌다. 하지만 오늘의 대학가에서 졸업 앨범은 여러 사정으로 사라지고 있다. 학교에 대한 연대감 자체가 줄어든 게 근본 이유다. 지난 4월 어느 대학의 앨범 사진 촬영 땐 80명의 학과생 중 다섯명만 참석한 일도 있었다. 개인정보가 필요한 자들은 이젠 앨범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수백만 명 정보를 통째로 빼낸다. 졸업 앨범 속 수백 명 연락처를 넘기며 판촉 전화하던 업자들이 차라리 순박했다.
(김명환 사료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