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살겠다 갈아보자" "갈아봤자 별수 없다"
[10] 사사오입 개헌과 제3대 大選
1954년 10월5일, 서울 명동의 시공관(市公館)에 5000여 명의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좌석이 부족해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은 옥외 확성기 앞에서 귀를 기울였다.
이미'개헌반대'를 천명했던 조선일보 주최로 이뤄진 '개헌안(改憲案) 대토론회'였다.
9월 집권 자유당이 발의한 개헌안에는 '초대 대통령에 대한 중임(重任) 제한을 철폐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이 종신 집권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던 것이다.
물 끓듯 일어난 개헌 반대 여론은 이 토론회에서 절정을 이뤘다.
11월27일 국회에서의 개헌안 표결 결과 가(可) 135표가 나왔다. 재적의원 203표의 3분의 2인 136표에서 1표가 부족해
부결이 선포됐지만, 이틀 뒤 최순주(崔淳周) 부의장은 "203명의 3분의2는 사사오입(四捨五入, 반올림)에 의해
135명이므로 가결됐다"고 말했다. 헌정사에 오점을 남긴 이 개헌에 반대한 의원들은 호헌동지회를 결성,
1955년 제1야당인 민주당으로 발전시켰다.
1956년 재3대 대통령 선거는 사상 두번째, 휴전 이후 첫 직접선거였다.
민주당의 신익희(申翼熙) 후보는 지금까지도 반정부 시위에 등장하는 저 유명한 구호를 처음으로 내걸고
이승만에 도전했다. 그것은 "목살겠다 갈아보자"였다. 여당인 자유당은 "갈아봤자 별수없다"로 맞섰지만
독재에 지친 국민들은 5월3일 신익희의 한강 백사장 연설에 30만명이 운집할 정도로 호응했다.
그러나 이틀 뒤인 5일, 신익희는 유세를 위해 호남으로 가던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급서(急逝)했다.
5월15의 투료에서 국민들이 이미 세상을 떠난 신익희에게 던진 표(무효표)는 서울에서만 이승만보다
8만표가 더 많았다. 81세의 이승만은 3대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민주당의 장면(張勉) 이 자유당의
이기붕(李起鵬)을 꺽고 부통령이 돼 '여야동거'의 구도를 이뤘다.(유석재 기자)
2008년 6월24일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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