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구 신길동 영등포구 신길동 '새롭고 좋은 일이 많이 생기는 마을'. 영등포구 신길동(新吉洞)은 자신이 사는 마을이 항상 행복하고 새로운 일로 가득 찼으면 하는 마을 사람들의 바람에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신길동 24번지 올림픽대로 북단 여의도 강가에는 '귀신바위'가 있다. 옛날 바위 아래로 .. 우리동네옛이야기 2020.03.02
노원구 하계동 노원구 하계동 미꾸라지가 昇天했다가 떨어졌다는 전설 "이것은 신령스러운 비석이다. 이를 범하는 사람은 재화(災禍)를 입으리라."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비석인 '이윤탁 한글 영비(보물 제1524호)' 에 쓰여 있는 문구다. 비석은 조선 중기 문신인 이문건(1494-1567)이 아버지 이윤탁의 묘에 .. 우리동네옛이야기 2020.03.02
양천구 신월동 양천구 신월동 조선시대 한 고을 원님이 양천향교를 지나 지금의 양천구 신월1동 동쪽 부근 돌다리 앞에 이르러 마을을 내려다봤다. 원님이 바라본 마을은 나지막한 야산지대로 시야가 트여 있어 멀리 떠오르는 달빛이 유난히 밝게 보였다. 감탄한 원님이 마을 이름을 '고운 달이 비치는 .. 우리동네옛이야기 2020.02.26
동대문구 용두동 동대문구 용두동 동대문구 용두동(龍頭洞)은 마을을 감싼 뒷산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대는 것 같고, 종로 쪽으로 향한 동네 입구가 용의 머리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용두동은 청계천, 정릉천 등의 물줄기가 흘러 '물맛 좋은 고장'으로 유명했다. 이곳에는 우물이 하나 .. 우리동네옛이야기 2020.02.25
중량구 묵동 중량구 묵동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애 울어 발길 예놋다'.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1441-1457)을 강원도 영원까지 호송하고, 왕명대로 사약을 건넨 금부도사 왕방연(王邦衍)은 한양으로 돌아오면서 괴.. 우리동네옛이야기 2020.02.18
금천구 시흥동 금천구 시흥동 조선 태조때 궁궐 지키려 절 지은 곳 고구려가 한강 이남까지 진출했을 때 금천구 시흥동(始興洞)은 '잉벌노(仍伐奴)'라 불렀다. '뻗어나가는 땅' 이라는 뚯이다. 1914년부터 '일어난다' '뻗어간다'는 의미를 살려 시흥동이라 이름 붙였다. 시흥동 호암산 정상에는 가로 22m, 세.. 우리동네옛이야기 2020.02.12
도봉 방학동 도봉 방학동 도봉산 중턱, 학들이 평화롭게 놀던 곳 도봉구 방학동(放鶴洞)은 조선시대 왕이 도봉서원 터를 정하기 위해 도봉산 중턱에 올라 내려보니 학들이 평화롭게 앉아 놀고 있었던 곳이란 유래가 전해진다. 지형(地形)이 학이 알을 품는 것 같다고 해 이렇게 불렀다는 설도 있고, 곡.. 우리동네옛이야기 2020.01.20
서대문구 홍제동 서대문구 홍제동(弘濟洞) 서대문구 홍제동(弘濟洞)은 조선시대 국립여관 격인 홍제원이 있어 이름 붙여졌다. 중국으로 가는 관리나 여행객들은 도성을 빠져나와 무악재를 넘어 홍제원에서 무거운 행낭을 풀었다. 중국 사신들은 이곳에 머물며 휴식을 취하고, 예복을 갈아입는 등 한양으.. 우리동네옛이야기 2020.01.15
강북구 수유동 강북구 수유동(水踰洞) 강북구 수유동은 북한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려 온 물이 마을에 넘쳤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우리 말로는 물이 넘친다는 뜩으로 '무너미'라 불렀다. 이곳에는 옛날 수유리 옆 삼양동에 사는 성격 고약한 삼형제와 얽힌 유래가 전해내려오고 있다. 삼형제는 자기네 .. 우리동네옛이야기 2019.12.20
관악구 난곡동 관악구 난곡동(蘭谷洞) 강감찬 장군 지팡이가 큰 나무로 자랐다는 곳 관악구 난곡동은 신림3동 과 신림13동이 2008년 통합돼 이름 붙여진 동(洞) 이다. 난곡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중기 무신인 강홍림(1560-1627) 장군이 이곳에 유배돼 은거하며 난초를 많이 길렀다는 데서 유래했다. 강 장군은 .. 우리동네옛이야기 2019.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