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31

발레리나 최고의 순간에 금이 간 뼈.....

2008 겨울 희망편지 [8] 발레리나 최고의 순간에 금이 간 뼈....... 외부 요인으로 빠진 절망 "끝났다" 생각하면 진짜 끝 포기 않고 기다리면 재기 제게는 발레가 전부이고, 그것을 빼앗길 것 같은 시련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런 시기를 저는 '블랙홀' 이라고 부릅니다. 스티븐 호킹이 말한 그 블랙홀 말압니다. 그 어두운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 할 것 같은 공포 때문입니다. 최악의 블랙헐은 1999년 9월에 찾아왔습니다. 그 블랙홀은 결국 저를 무대에서 끌어내렸습니다. 운명은 얄궃지요. 그해 봄 저는 발레리나 최고의 영예인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Danse)' 여성 무용수상을 받았습니다.그 영예를 안고 첫 해외 공연을 앞두고 있을 때 걷기도 힘들 정도의 통증..

그땐 그랬지 2022.02.19

나를 붙잡던 두 살 민영이의 손

2008 겨울 희망편지 [7] 나를 붙잡던 두 살 민영이의 손 한 달에 한 번 휴일을 이용해 어려운 이웃을 찾아 봉사활동을 나가게 된다. 때로는 선수시절의 동료들이, 때로는 내가 지도하는 KRA(한국마사회) 탁구선수들이 동반자가 된다. 독거 노인들을 찾기도 하고 불우한 아이들을 방문하기도 한다. 5년 전 선수들과 함께 경기도 양평의 한 복지시설을 찾았을때 두 살짜리 여자아이 민영(가명)이를 만났다. 아이는 심한 다운증후군 을 앓고 있었다. 다리가 굽어서 혼자 걸을 수 없었고 눈도 잘 맞추지 모하는 아이였다. 아이는 장난감과 먹을 것을 주자 그제서야 내게 기어서 오기 시작했다. 손도 정상이 아니었다. 품에 안고 점심과 간식을 떠먹였다. "이 아이는 커서도 혼자 살아갈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땐 그랬지 2021.11.08

비켜라, 癌! ...내가 간다

2008 겨울 희망편지 [2] 2008 겨울 희망편지 [2] 비켜라, 癌! ...내가 간다 올해는 나의 안식년이다. 요즈음은 교수들이 '안식'하는 해가 아니라 연구에 더 집중해야 하는 해라고 '연구년'이라고 불린다. 2001년 첫 연구년을 보스턴에서 보낸 후 오래 전부터 난 두 번째 연구년을 준비했다. 공동 연구할 교수에게서 초청장을 받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조건의 연구비까지 확보해 놓았다. 그래서 올 여름 난 미국에 가서, 지금쯤은 샌디에이고에서 아름다운 정원이 내다보이는 도서관 창가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2004년 유방암이 재발한 후 이제까지 수십차례 받은 항암치료가 별 효과가 없어 다시 새로운 약제로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치의의 말에 난 꼼짝없이 발이 묶였다. 미국에..

그땐 그랬지 2021.10.25

역경이 오면 역전을 노려라

2008 겨울 희망편지[5] 역경이 오면 역전을 노려라 나는 일본에서 18년을, 한국에서 48년을 살았다. 섭섭하게도 '반(半) 쪽발이', '일본식', '재일교포' 라는 꼬리표가 지금까지 붙어 다닌다. 일본에 살 때는 가난했다. 우유 와 신문배달을 하면서 학비를 보탰다. 고3 때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처으 ㅁ새 옷이란 걸 입어봤다. 그 가난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홀로 조국 땅을 찾았지만, 선수생활 3년만에 어깨와 팔꿈치 부상으로 투수 생명이 끝나버렸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모국 생활 48년은 그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전쟁 같은 나날이었다. 세월이 흘러 올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했다. 지난해에 이어 2연패다. 구단에서도 3년간 감독 계약을 연장해 줬다. 어..

그땐 그랬지 2021.10.25

파도가 가르쳐준 교훈 "견뎌내라"

2008 겨울 희망편지[6] 파도가 가르쳐준 교훈 "견뎌내라" 두 아들과 함께 미국 LA에 살때, 남편이 한국에서 주식투자를 했다가 쫄딱 망했다. 1원도 남지않고 폭삭 망했다. IMF로 세상이 지옥처럼 변해버린 1998년이었다. 그 충격을 도저히 이겨낼 방법이 없던 나는 무작정 화와이행 비행기를 탔다. "물에 빠져 죽어야겠다." 오아후섬 북쪽에 터틀배이라는 해변이 있었다. 파도가 거칠기로 유명한 바다다. 밤이 이슥할 무렵 정신을 놓아버리고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죽는다, 나는,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가슴 울컥한 일이 벌어졌다. 죽는다, 나는,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가슴 울컥한 일이 벌어졌다. 한 걸음을 바다로 들어가면 파도가 나를 뒤로 되돌려놓는 것이다. 그 힘이 얼마나 센지, 온몸이 멍이 들 정도였다...

그땐 그랬지 2021.10.25

삶의 소중함 일깨워준 '봉사명령!'

2008 겨울 희망편지 [4] 삶의 소중함 일깨워준 '봉사명령' 중소기업에서 일하다가 회사가 어려워져 사직을 하고 3개월 정도 실업자로 지냈다. 그러던 중 지난 5월 한 친구가 동업을 제안했다. 잠시 고민했지만 일확 천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불법 성인오락실을 열었다. 두 달도 못 돼 경찰 단속에 걸렸다. 졸지에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명령 80시간까지 선고받은 범죄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난 10월, 법무부 서울동부보호관찰소에 신고하고 2시간 정도 안내교육을 받은 후 강동구 성내동에 있는 성내복지관에 배치됐다. 짜증이 났다. 보호관찰소 직원에게 시비를 걸며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 직원들과 함께 봉사를 나갔다. 서른 집을 돌며 독거노인, 어린 가장들, 장애인 가정을 찾아 도시락을 배달했다...

그땐 그랬지 2021.09.07

'정직'으로 빚은 동동주

2008 겨울 희망편지[1] 강진군 병영(兵營)주조 김견식 대표는 올 71세 술공장 사장이다. 처음엔 '남의 집살이'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게 57년이었다. 주인의 권유로 1986년 주조장(酒造場)을 인수, 오늘에 이르렀다. 한평생 술 빚고 술 팔며살아왔다. 경영, 마케팅, 홍보, 이런거 몰랐다. 연간 매출은 늘 1000만, 2000만원이었다. 인동(隣洞)에 차츰 입소문이 나면서 3000만, 4000만, 마침내 5000만원대로 올라선 게 재재작년이었다. 재작년8000만, 작년엔 1억원까지 돌파했다. 금년 말 에상은 1억 8000만원이다. 별거 아닐 수도 있고 별거일수도 있는 실적이다. 내용은 '섬싱 스페셜'이다. 유레없는 불경기라고 난리인 세상 아닌가. 불경기라 해서 다 안되지 않고, 호경기라고 다 잘되..

그땐 그랬지 2021.09.07

유리벽 사이에 둔 "사랑해"

2008 겨울 희망편지 [3] 유리벽 사이에 둔 "사랑해" 내가 인천공항 출국장 내 통과 여객 카운터에서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한 여자 승객이 입국 거부를 당했으니 선양행 항공기로 강제출국시키라는 출입국사무소의 연락을 받았다. 입국장으로 내려가보니 중국교포로 보이는 50대 여자 승객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일본 오사카에 있는 딸을 만나고 중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국에서 노무자로 일하고 있는 남편을 만나려고 입국 하려다 거부당했던 것이다. 출입국 규정에 따르면 일본 비자가 있는 중국인은 한국 비자가 없어도 입국이 가능하다. 그러나 규정은 규정일 뿐, 최종 판단은 출입국 담당 직원이 하게 된다. 담당직원은 그 아주머니의 불법체류를 염려했던 것 같다. 당시는 세계적인 테러 위험으로 공항 입국심사가..

그땐 그랬지 2021.08.18

1974년 야간 완행열차의 추억

서민과 청춘들, 밤새워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1974년 11월 밤 10시 50분 목포행 완행열차 안, 다음 날 오전 10시 50분에야 도착하다 보니 젊은이들이 지루했나 보다. 수원역 부근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자 공안원이 제지하고 있다. 당시는 지금보다 먹고사는 게 어려워 열차 승객의 60%가 완행열차를 이용했다. 특히 야간 완행열차는 서민들의 애환을 가득 싣고 달렸다. 74년 11월 15일자 동아일보는 '스프링이 튀어 나온 의자, 어두침침한 전등, 통로에 신문 깔고 자는 사람, 녹슨 수도관과 화장실 때문에 객실까지 악취가 풍기고.... 돼지를 들고 탄 손님의 자루 속에선 돼지 울음소리가 들렸다..."며 승객이 화물열차의 짐짝처럼 취급되던 완행열차의 실상을 전했다.(이훈구기자) 2011년 5..

그땐 그랬지 2021.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