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거실마다 '뻐꾸기시계'
1990년대 신도시 붐 타고 히트
이 집 저 집 뻐꾸기들이 한 시간마다 울어댔다. 1990년대 많은 아파트촌의 풍경이다. 당시 좀 여유 있는 집이라면
거실 벽에 뻐꾸기 시계 하나쯤 걸어놓는 게 크게 유행했다. 정시마다 통나무집에서 쏙 튀어나온 앙증맞은 새는
울음 횟수로 시간을 알려줬다. 1987년 국내 업체가 국산화에 성공하면서부터 보급이 늘기 시작했다.
유행에 불을 댕긴 건 신도시였다. 1991년 9월 분당, 1992년 12월 일산 신도시가 등장해 아파트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거실의 휑한 벽을 채울 물건의 수요가 급증했다. 예쁜 통나무집 모양의 뻐꾸기시계는 실내에 표정을
불어넣을 장식품으로도 딱이었다. 한 업체는"뻐꾸기 울어대는 그대 거실은 이미 숲"이라고 광고했다.
한 동안 집들이 선물이나 업체들의 경품 , 판촉 용품도 이 시계가 휩쓸었다. 1992년엔 제조업체가 20곳이 넘었다.
1995년 8월1일부터 국내 TV홈쇼핑 방송 개시 때 판매상품 1호도, 같은 해 1월부터 8월까지 한 신용카드 고객들이
가장 많이 구매한 상품도 뻐꾸기시계였다(조선일보1995년8월2일자). 이 무렵 KBS아나운서실에는 매시40분마다
우는 뻐꾸기 시계가 걸려있었다. 한 신입 아나운서가 정스 뉴스방송할 시간을 깜빡 잊는 사고를 낸 후 모든
아나운서들에게 뉴스 방송20분전을 잊지말라고 알람을 우리게 한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 실제 뻐꾸기는 아기자기한 통나무집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제 둥지도 없이 개개비, 멧새 같은 다른 새
둥지에 몰래 알을 낳아 부화 시키는 '얌체새'다. 하고많은 새 중에서 왜 뻐꾸기 소리를 시계에 썼을까.
한 동물학자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은 뻐꾸기는 부근에서 자신이 진짜 어미임을 알리려고 뚜렸한 소리로 울어댄다"며
"뻐꾹 뻐꾹 분명하게 끊기는 소리여서 시계를 썼을 것"이라고 보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뻐꾸기시계 유행은 시들해졌다.
오늘의 30∼40대들에게 숲속 통나무집에서 작은 새가 튀어나오던 그 시계는 동심(童心)을 자극한 물건이었다.
'시간을 알리고 들어간 뻐꾸기는 집 안에서 무얼 할까?' 궁금해 했던 한 소년은 어른이 되어 시계 속 세계를 소재로
삼은 애니메이션 '똑딱하우스'를 제작해 세계170여개국에 수출했다. 정길훈 퍼니플럭스 대표의 경우다(조선일보
20211년12월22일자). 소녀 시절 뻐꾸기시계가 한없이 신기했던 송지혜씨도 시계 속을 여행하는 내용의 책 '시간의 정원'을
작년 말 출간해 프랑스, 대만, 중국 등에 수출하는 쾌거를 올렸다. 전자회로 속 '박제(剝製) 된 뻐꾸기'도 인간을 자극하고
영감을 안기기에 충븐했다.(김명환 사료연구실장)
조선일보 2018년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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