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황식의 풍경있는 세상

그래서 우리는 우울합니다

중전마님 2022. 10. 5. 20:59

김황식의 풍경있는 세상

 

 

그래서 우리는 우울합니다

올해는 추석이 다른 해보다 일찍 지나갔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눈 말처럼, 우리 조상들은 추석 때면 더위를 떠나보낸 좋은 날씨 속에 풍성한 음식을 장만하여 가족 친지와 더불어 즐겁게 지냈기에 한평생의 삶이 늘 더불어 즐겁게 지냈기에 한평생의 삶이 늘  그와 같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지금 세상이 많이 변했지만 우리 마음속의 염원은 여전합니다. 그러나  이번 추석을 맞으며 드는 제 생각은 이와 사뭇 달랐습니다.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많은  국민이 피해를 입었고, 포항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특히 "어머니,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세상을 뜬 15세 소년과 그 어머니의 사연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울합니다. 모처럼 가족들이 반갑게 만났지만 나눈 이야기는 우울한 것들이었습니다. 코로나 사태는 언제쯤 종식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고물가, 고금리, 고환률로 경제 사정은 어렵고,  미.중패권 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세계 정세의 불안으로 우리의 앞날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정치권은 '타협 없는 대립과 갈등'  '부끄러움을 모르는거짓말'  '참을성 없는 증오의 표출'  '미주알고주알 상대방 흠집 내기' 등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또 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광주에서 보호종료아동 두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하였습니다. 그 선택을 하기까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의 양육을 받을 형편이 안 되는 아동들은 아동보호시설에서 생활을  하다가 18세가 되면 퇴소하여 자립하게 됩니다.  이른바 '보호종료아동' 입니다.  평범한 가정의  청소년들이 부모님 도움을 받아도 독립하기 쉽지 않은데 이들이 독립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치 황야에 내몰린 것처럼 막막할 것입니다.  사전 준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정부는 보호아동이 자립을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보호가 종료되는 나이를 만 18세에서 본인 의사에 따라 만 24세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매월 지급하는 자립 수당도 인상하고 지급 연수도 연장하는 등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정부 밖에서도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돕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2015년부터 어느 대기업이 10개 지방자치단체에 희망 디딤돌센터를 설립하여, 보호종료아동에게 최대 2년간 1인 1실의 원룸형 숙소를 제공해 안정적으로 자립생활을 준비 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교육과 상담을 통해 요리와 건겅관리 같은 생활지식, 돈 관리, 취업 정보 등 자립을 위한 개인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2013년 그 대기업의 임직원들이 모아 기부한 250억원에 회사가 250억원을 보탠 것이 사업의 종잣돈이 되었고 매년 임직원들의 기부금이 보태어져 2016년 부터현재까지 전국 10개 지역에 13개 센터를 개설했습니다. 오는 11월에는 목포와 순천에, 내년에는 충북에도 센터를 개설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매년 2000명 이상의 보호종료아동이  사회로 나오는 현실에서 아직 갈 길이 먼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겼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울합니다.   문득 총리 재직시절, 마포에 있는 어느 아동보호시설을 방문했을 때 일이 생각납니다. 여대생으로 보이는 한 청년이 아이들과 놀고 있어서 원장님에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 시설 출신 보호종료자라고 합니다. 주말이면 고향집 찾아오듯 찾아와서 아이들과 널다 간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30대 토번아 되었을 그 여성이 어디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조선일보  2022년 9월17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