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엽서- 대한민국60년

'깡통 분유' '악수표 밀가루' 의 추억 <28> 구호물자

중전마님 2023. 10. 10. 15:50

 

' 깡통 분유'  '악수표 밀가루'의 추억

 

"전쟁 뒤 구호물자로 우유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우유와 물엿을 섞어 만든 비가가 나노자 그것은 나의 어린 시절 군것질을 지배했다." 답사여행 때 반드시 밀크캐러멜을 챙겨 먹는다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회고다.('나의 문화유산답사기2') 미국이 우리나라에 제공한 구호물자의 역사는 광복 직후 점령지 행정구호 원조로 시작됐다.  6.25전쟁 기간과 그 이후로는 한국민간구호게획(CRIK), 유엔한국재건단(UNKRA), 국제협조처(ICA), 공법(PL)480 등에 따른 원조가 이루어졌다. 1950년대  우리나라가 받은 원조는 24억 달러가 넘었다.  이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공법480에 따라 1956년부터 우리나라에 제공된 구호물자다. 정식명칭은 미국 공법480호 농업수출진흥 및 원조법인데, 미국의  농산물 가격 유지와 저개발국 식량부족 완화를 위해 잉여농산물을 각국에 제공할 수 있게 한 법이다. 당장의 배고픔을 면하는 데는 밀가루가 최고였으니 '480 밀가루',

'악수표 밀가루' 등으로 수제비 만들어 먹던 그 시절을 기억하는 세대에게 수제비는 별싱이 아니라 배고픔의 상징이다.  '악수표 밀가루'란 또 무엇인가?  공법480에 따라 제공된 구호물자 밀가루 포대에는 태극기와 성조기 아래 악수하는 두 손이 인쇄돼 있었다. 종이가 귀했던 그 시절 그 포대를 찢어 교과서 표지를 싼 학생들도 많았다. 밀가루 외에 옥수수가루와 분유도 구호물자로 많이 제공되었고 이에 따라 옥수수가루로 만든 죽이나 빵도 배고픔을 달래는 데 요긴했다. 학교 급식 빵도 구호물자 옥수수가루가 주재료였고, 구호물자 간유를 학교에서 먹었다는 이즐도 많다. 성석제 소설 '아름다운 날들'에 따르면 성당과 구호물자의 관계도 각별했다.

선진국 종교기관에서 보내준 구호물자도 많았던 것. "그 무렵 눈이 파란 신부님이 태어난  나라 사람들이  안쓰고 못쓰는 물건들을 모아서 성당으로 보내주었답니다. 그걸 구호물자 라고 했지요..... 성당에 가면 버터 깡통도 주고 깡통 초콜릿도 주고 분유 깡통도 주었으며 깡통 사탕도 나눠주었습니다."  공법480에 따른 구호물자 지원은 1981년에 종료되었고 우리나라는 해외에 구호물자를 보내줄수 있는 형편이 된지 오래다. 그러나 국제구호전문가 한비야가 2005년에 지적한 다음 사항은 얼마나 개선되을까? "우리가 원조 받은 액수는 총 130억 달러 정도이고, 지금까지 원조한 총액은 약 22억달러다. 갚아야 할 은혜의 빚이 이렇게 많은데도 우리는 국민 총소득의 0.06퍼센트, 1인당 한 달에 4백 원 정도를 원조금으로 내고 있다. ....한국의 위상과 국력에 걸멎으려면 최소한 0.1페센트로는 올려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김동식, 문화평론가(인하대교수)

 

2008년 8월15일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