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황식의 풍경있는 세상

소록도 가는 길

중전마님 2023. 11. 14. 14:56

 

 

소록도 가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자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또 한 개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정라도길."  한센인이던 한하운 시인의 시 '황토길(전라도길)'입니다. 중학생 시절 이 시를 처음 읽고 가슴이 먹먹했던 느낌은 그 후로 내내 소록도와 한센병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광주고등법원에 근무할 때 주말에 혼자서 차를 몰고 소록도를 찾아가기도 하였습니다. 당시는 고흥반도 끝자락인 녹동항과 소록도 사이에 다리가 연결되기 전이었습니다.

저는 배를 타고 소록도로 들어가면서, 한센병이 감염된 아들을 소록도에 데려다주며 "이제 너에게 가족은 없다. 다 잊고 잘살아라"당부하며 돌아가는 아버지의 슬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한센병에 감염되면 그 가족들은  이웃에게 기피당하고 혼삿길도 막히니 부득이한 일이었습니다.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소록도 바다에 몸을 던진 이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셍병을 천형(천형)이라 불렀습니다. 소록도는 지옥과 같은 삶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의약 기술의 방달로 한센졍은 쉽게 치유가 가능한 단순한피부병의 일종으로 남았습니다. 이전에 한센병 환자를, 우리 모두를 그토록 괴롭혔던 한센병을 극복하였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과학자들 덕택입니다. 총리 재직 중인 2012년 5월에는 소록도에서 열린 '전국 한센 가족의 날'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치유되어 소록도를 떠났던 사람들, 소록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함께모여 벌이는 축제입니다. 한센병이 극복된 덕분입니다. 함께 어울려 배구도 하고 동행한 아내와 함께 배식 봉사를 한 것이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아내의 할아버지가 소록도 병원장으로 근무한 인연이 있어 여느 때와 달리 아내가 따라나섰습니다. 당시 한 신문은 '총리 부인 이례적으로 한센 가족 행사 참석, 조부가 소록도병원장으로 인술 베풀었기에"라는 제목으로 가족도 잘 모르는 병원장으로서 치적을 취재하여 보도하였습니다. 한센병을 극복하지 못하여 한센병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던 시절,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인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40년을 훌쩍 넘겨 소록도에서 한센인을 돌보았습니다. 그들은 2005년 11월 지인들에게 편지 한 통만을 남기고 조용히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자신들은 나이가 70세를 넘어서 소록도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 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며, 2017년에는 두 분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 위한 '마리안느와 마가렛 노벨평화상 범국민 추천 위원회'가 결성되었습니다. 저는 추진 위원장을 맡아 힘을 보탰습니다. 그 과정에서 소록도를 여러 차례 방문하였습니다. 이 일을 함께했던 소록도 성당 김연준 신부님은 이들의 숭고한 정신을 가리기 위해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설립하였고, 이 법인과 고흥군은 소록도 건너편 바닷가에 '나눔 연수원'을 건립하였고, 마가렛 선양 사업추진 위원회를 구성하여 '마리안느. 마가렛봉사 대상'을 간호 부문과 봉사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7일 시상식에 초대받아 다시 소록도를 찾았습니다. 김 신부님은 고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이번 봉사 부문 수상자인 천주교 제주교구 성 다미안회의  공적을 전해주었습니다. 성 다미안회는 1980년 창립한 사회 봉사 단체로서,   특히 지난 40여 년간 매년 200여 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봉사대가 떼로 몰려와(?) 며칠 동안 머물며 청소, 목욕, 이.미용, 예초, 도배, 집수리 등 각종 봉사활동을 하고 떠나는데, 한마디로 말해 소록도를 발칵 뒤집어 놓고 간다며 웃었습니다. 소박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속에서 진행된 시상식이 끝난 뒤 두 간호사가 살았던 관사를 둘려보았습니다. 다시 본 소록도 성당은 건물 자체도 아름답지만 한센병 환자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예수의 모습을 형상화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이었습니다.소록도는 이청즌 선생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으로 변해간다고 생각하며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전국무총리)

 

조선일보

2023년 11월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