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인

박영하 김일 투병생활 도운 의료인

중전마님 2020. 3. 11. 21:33


'박치기왕' 김일 투병생활 도운 의료인

1950-60년대 베이비붐을 타고 개인 산부인과에서 시작해 훗날 의과대학을 설립하고 대학병원으로 발전시킨 산부인과

의사 3명이 있다.  을지대병원, 가천의대 길병원, 차의과학대 차병원 설립자들이다. 그중 을지의대를 세운 범석(凡石)

박영하(朴永夏. 사진) 을지재단 명예회장이 향년 87세로 7일 타계했다. 고인은 한평생 우리나라 의술 발전과 인재 양성에

헌신한 의사이자 교육자였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박 명예회장이 향년 87세로 7일 타계했다. 고인은 한평생 우리나라

의술 발전과 인재 양성에 헌신한 의사이자 교육자였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박 명예회장은 1956년 서울 을지로4가에

'박영하 산부인과의원'을 내면서 본격적인 의사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서울 시내에서 야간에 구급차 사이렌이 울리면

명동 백병원으로 가는 맹장염 환자기 아니면, 박영하 산부인과로 가는 제왕절개 산모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산부인과는

상황을 이뤘다. 그는 "의사는 한시도 환자를 떠날 수 없다"며 병원 입우너실을 가정집으로 개조해 하루도 쉬는 날없이

진료에 임했다. 일요일에도 오후 2시까지 환자를 돌봤다. 1967년 그는 "병원은 사유재산이 아니다"며 국내 최초로 병원을

공익법인으로 전환했다. 이후 1981년 을지대병원의 전신인 대전을지병원을 건립하고, 이를주축으로 서울 노원구에 

을지병원, 금산을지병원을 잇따라 열었다. 1998년 8월 대홍수로 상계동 및 의정부 일대에 이재민이 쏟아지자,

그는 수락초등학교에 무료 진료소를 1주일간 개설해 수재민들의 건강을 몸소 돌봤다. 또한 박치기로 유명한 프로레슬러

고(故) 김일 선수가 일본에서 홀로 투병 중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를 한국으로 이송해 을지병원 입원실에서 요양할 수 있도록

했다. 박 명예회장은 장학 사업에도 열정을 쏟았다. 1997년 개인 재산 10억원을 출연한 범석학술재단은 지속적인

사비 출연으로 현재 자산이 110억원으로 불었다,  국내 100대 장학재단이다. 이 같은 공헌을 인정받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유족으로 부인 전증희 여사와 아들 준영(을지대 총장), 딸 준숙(범석학술재단 이사장)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노원구 을지병원, 발인은 10일 오전 8시이며, 영결예배는 을지대 성남캠퍼스 지천관,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이다.(김철중 으료전문기자)

조선일보 2013년 5월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