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인

한국 여성운동의 代母, 박영숙 前한국여성재단 이사장

중전마님 2020. 5. 28. 13:32

 

눈감는 순간까지 ......."시민운동 위축 안타까워"

부천署 性 고문 사건 시위하며 여성운동가로 주목 받기 시작 이희호 여사와도 동지로 활동DJ 권유로 정계 입문해 남녀고평등법 개정 이끌어

'100인 기부릴레이' 주도하고 유언장엔 "내 명의 건물 기부"

 

고(故) 이우정 여사와 함께 한국 여성운동을 이끌어온 박영숙(81) 전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이 17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유족 측은 "척추 부위에서 발생한 암이 1년여 투병 과정에서 몸의 다른 장기로 전이됐고 12일부터는

호흡곤란 증세 때문에 입원했었다"며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또렸한 의식을 유지했다"고 했다.

임종 순간을 함께한 여성운동계 후배인 살림정치여성행동 박옥희 공동대표는 "선생님은 병상에서 '시민 운동계가

요즘 위축된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며  " '여성들의 정치 세력화를 위해서는 2014년 지방선거를 잘 치러야 한다'는

말씀도 남겼다"고 말했다.

고인은 야권 여성 정치인들의 대모(代母)였다. 민주당 한명숙, 이미경, 남인순 의원 등이 가깝다.

총선 한 달 후인 작년 5월에는 이들과 김현미, 유은혜, 김현 의원 등 새 당선인들을 경기도 일산 집으로 불러

밥을 지어서 대접하기도 했다. 유은혜 의원은  "당시 암 진단검사 진행중이셨는데도 여성 의원이 많이 배출된 것을

그렇게 기뻐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별세 전날인 지난 16일  국회에서 고인의 건강 회복을  기원하는 기도회를 열기도

했다. 기도회는 4월이 이어 두번째였다.

평양 출신으로 전남여고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는 YMCA연합회 총무,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며 평생 여성운동에 헌신했다. 1986년 부천경찰서 성 고문 사건 당시 한국여성단체연합회 회장을 맡아 이 사건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에 앞장섰다. 8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평민당에 들어간 뒤 88년

전국구 1번으로 13대 국회의원이 됐다. 이후 평민당 총재 권한대행, 민주당최고위원(1993년),

지속가능발전위원장(2002년) 등을 지냈다. 여성이 친권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 가족법 개정을 비롯해 남녀공용평등법, 탁아법 등을 이끌었다. 김현미의원은 "고인이 모범적인 의원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후 많은 여성 정치인이 등장할 수

있었다"며 "환경문제를 최초로 정치적 의제로 만든 분이기도 하다"고 했다. 

고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와도 각별한 사이였다. 한국 사회 초기 여성운동을 함께 이끌어간  '동지'

였기 때문이다.  이 여사는 지난 14일 오후 투병 중인 고인을 찾아가 쾌유를 기원했으나 이날 별세 소식을 듣고는

"참으로 안타깝다"며 더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한 동안 정치권과 거리를 뒀던 고인은 작년 2월부터  올해3월까지 안철수재단(현 동그라미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지난 16일 오전 고인을 찾아 5분간 대화를 나눴던 안의원은 별세 소식을 듣고 "우리 사회의 거목을 잃었다"고 했다.

고인은 환경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시절에는 '100인 기부 릴레이'를 주도하며 기부 문화

확산에도 힘썼다. 시민운동가 사이에선 '따뜻하고 다덩한 선배' '맛있는 밥을 지어주는 엄마'로 기억된다.

고인이 연말마다 지인 수십명을 모아 손수 음식을 차려 대접했던 송년회는 시민 운동계의 소중한 행사 중 하나로

꼽혀왔다.  몇 달 전 서울 역촌동에 있는 본인 소유 건물을 교회에 기부한다는 유언장을 썼다.

고인은 1996년 별세한 한국 해방신학의 대부 고(故) 안병무 한신대  전 명예교수의 부인이다.

국밈훈장 무궁화장을 비롯해 국민훈장 모란장,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 올해의 환경인상, 올해의 여성상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전문 번역가인 아들 안재권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발인은 20일 오전7시30분. (최승현기자)

조선일보 2013년 5월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