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모던 조선'

'카페 껄'과 의대생 사랑에 장안이 "훌쩍!"

중전마님 2022. 12. 5. 15:48

 

 

'카페' 껄과 의대생 사랑에 장안이 '훌쩍!"

 

추석을 1주일 앞둔 1933년 9월 27일, 한강 인도교에서 한 여자가 뛰어내렸다. '자살도 유행처럼' 성행하던

당시,  한 여자의 투신은 큰 관심을 끌기 어려웠다. 조선일보는 28일자 석간에서 '카페 여급 한강에 투신' 이란 1단 기사로 이를 처리했다. 이튿날 조간에선 3단기사로 커져, 더욱 상세한 내용이 전해졌다. 가서에 따르면, 

카페 '엔젤'의 여급인 봉자(峰子)의 본명은  김갑순(金甲順 . 20)으로 "붉은 등불 아래 푸른 등불 아래 생활해오다,  그 곳에 출입하는 의사와 사랑을 속삭거리게 됐다"고  전했다. 상대는 처자가 있는 사람이었다. 본부인이 찾아와 난리를 치렀고, 경찰에 고소해 불려가기도 한 수모 끝에, 한강 인도교에서 투신했다. 뻔한 스토리였다. 

그럼에도 기사가 확대된 것은, 워낙 미모였던 그녀가 '상해 공산당의 세포였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튿날(29일) 장안이 발칵 뒤집혔다. '봉자' 의 상대였던 청년 의사가 뒤따라 한강에 투신했기 때문이다.   

이날자 도하 각 신문은 일제히 리 '사랑의 순사(殉死- 따라 죽음)'를 대서특필했다.  조선일보도 한 지면의 절반 가까이 관련 기사로 채웠다.  '카페 껄' 애인을 따라 자살한 이는 경성제대 부속병원 내과 조수 로병운(28)이었다. 조선일보가 취재한 두 사람의  '비련애화(悲戀哀話 )' 에 따르면 지위와 명예를 갖춘 어느 젊은 남자가 지위도 없고 명예도 없이 '테블' 에서 '테블'로, 이 손님  저 손님의 무릎팍을 방석 삼아 넘노는 카페 여급과 순정의 사랑을 교환 하다 죽음의 길을 밟았다"는 것이다. 식민지 치하 가난과 질병, 남편의 학대 등으로 인한 자살 소식이 그칠 날이 없었다. 조선일보 지면에는 툭하면 '자살하는 것이 근레에 한 유행병 같이 되는 모양'

(1923.3.27). '자살증도 유행병'(1923.11.6), ,대구에 자살 유행'(1933.11.5), '봄은 감상적! 자살 유행'(1933.11.5.),  '봄은 감상적! 자살 유행'(1936.2.8.), '철도자살유행'(1938.6.10) 같은 우울한 기사가 간단없이 등장했다. 당시 조선일보 표현대로 그흔한 '염가(廉價)의 자살'과 달리 신분을 초월한 두 사람의 소설 같은 정사(情死 )는 1930년대 사회에 충격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특히 두 사람이 만든 '연애 공식'이 나중에 발견되면서, 다시 한번 세상 사람들은 두 사람의 사랑이 얼마나 뜨거운 것이었는지를 절감했다. 그 공식은 

'R+K = RK = L, RK-K =死 (Death)=D' 였다  "로에게 김을 더하면 그것은 '로김' 이니 '라이프(Life)' 즉사는 것이요, 로김에서 김을 빼면 그것은 '데쓰' 즉 죽엄" 이라는 것이다.

(김영철 디지틀뉴스부 편집위원 kyckhan@chosun.com)

조선일보

2011년 3월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