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70년...물건의 추억

남편들'삥땅'역사 깃든 월급봉투 '집으로바로 가자'글귀 인쇄도

중전마님 2022. 10. 14. 13:19

 

 

남편들 '삥땅'역사 깃든  월급봉투

 '집으로 바로 가자' 글귀 인쇄도

 

1977년 3월부터 한동안 경찰관 월급봉투에 새로운 문구 한 줄이 인쇄됐다. '집으로 바로 가자', 일종의 경고문이었다(조선일보1996년 7월2일자).월급을 현금으로 누런 봉투에 넣어 주던 시절, 모처럼 목돈을 손에 쥔 남자들이 종종 술집으로 직행했기에 이런 글귀까지 인쇄된 것이다. 하지만 월급날은 ㅏㅁ편이 좀 늦게 들어와도  타박라지 않는 아애들이 많았다. 눈 빠지도록 기다리던 아애 앞에 '옜다' 하며 봉투를 내민 가정은 "여보 수고 많았어요" 한마디 들으면 으쓱해졌다. 월급봉투는 '수렵시대에 남자들이 숲에서 잡아온 노루, 산돼지와 다를 것이 없는 전리품(이어령)' 이라고 할 만했다. 1980년대까지 이어진 월급봉투 시대에 회사 경리부 직원들은 한 달에 한 번 전쟁을 치렀다. 직원 수 3500여 명의 어느 백화점은 수십억원의 현금과 수포를 7개 은행에서 찾아 봉투에 나눠 담기 위해 직원 40명을 임시로 차출해 작업했다. 월급봉투의 추억은 '월급삥땅(횡령)'을 빼놓고는 말할 수없다. 아내 몰래 돈을 떼어내기 위해 갖가지 묘안들이 속출했다. 봉투 겉에 적힌 공제액을 부풀려 변조하고 수령액은 줄인 뒤 차액을 빼내는게 고전적 수법. 1960년대 인기 라디오 드라마 '아차부인재치부인'의 주인공은 아예 경리부에서 월급봉투 양식을 하나 구해 통째로 위조하는 수법을 썼다. 샐라리맨의 애환을 그린 김수용 감독의 1964년 작 영화 '월급봉투'에서 주인공은 월급 명세표에 가짜 부의금을 추가해 적었다. 당시 조선일보의 영화 소개 기사는 '월급을 횡령해 술값으로 쓰는 평범한 소시민'이라고 주인공을 설명했다. 최희준이 부른 영화 주제가는 "월급날은 남몰래 쓸쓸해진다/이것저것 제하면 남는 건 빈 봉투"라고 노래해 큰 공감을 얻었으나 1년 뒤 금지곡이 됐다. '남한 사람들이 이렇게 못산다'는 식으로 북한에 이용당할 소지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1980년대 은행 전산화 시대의 전개와 함께 월급봉투는 자취를 감춰가기 시작했다. "가정의 자존심이 무너졌다" "부계(父系) 사회 근본을 뒤흔드는 변혁"이라는 탄식이 나왔다.  하지만 온라인 시대의 큰 물결은 도도히 흘러갔다. 그래도 이번 추석엔 월급봉투를 한시적으로 부활하는 회사가 있다고 한다. 최소한 보너스만은 현금으로 봉투에 넣어준다는 것. 연휴 기간에 한국은랭이 공급하는 추석 자금 중 상당 부분도 회사원들에 대한 현금 지급에 쓰인다. 추억의 봉투를 받고 추억의 '삥땅'을 하는 사원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해진다.(김명환 사료연구실장)

 

조선일보

2015년 9월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