삥당 막겠다며 도입한 '버스 토큰'
툭하면 사재기, 투기 대상 되기도
"등교하는 자녀에게 토큰을 너무 여유 있게 주지 말아 주십시요." 1977년 11월 서울시내 일부 중학교들이 희한한 가정통신문을 각 가정에 발송했다. 그해 10월1일부터 등장한 버스 '토큰(token, 동전모양의 표)' 으로 학생들이 노름을 하는 일이 성행했기 때문이었다. 동전보다 작지만 가치는 꽤 높은 토큰이 도박용 칩 구실을 한 것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토큰을 10개 이상 갖고 있다가 적발되면 무조건 혼을 냈다(조선일보 1977년 11월27알자). 버스 토큰제는 이처럼 도입 첫해부터 부작용이 일어났다. 안내양이 현금을 만지지 않게 함으로써
삥땅(횡령)을 막고, 잔돈 거슬러 주느라 지체되는 시간도 줄이겠다는 취지였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일부 버스 기사들은 토큰을 빼돌려 판매상에 60%쯤 되는 헐값으로 넘겼다. 1978년 어느 지방 안내양 10여명은 24만 3000개의 토큰을 횡령했다가 구속됐다. 버스 회사들의 삥땅 대책은 토큰제 실시 후 더 강화됐다. 1978년 한 버스 회사는 안내양들 사물함을 뒤져 보려고 "간첩이 나타났다"고 거짓말하며 한밤중 숙소에서 잠자던 안내 양 66명을 사무실에 가두기도 했다. 버스 출입구 발판에 게수기를 설치하고 집계한 승객 수에 비해 입금액이 너무 적으면 버스 기사에게 '오차사유서'를 쓰게 한 회사도 있었다. 시민들도 불편했다. 토큰을 쓰면 요금이 할인됐지만 판매소가 너므 적었다. 1979년 서울의 버스 승객 중 토큰을 안 쓴 사람은 18%나 됐다. 토큰 구입이 어려웠던 건 일부의 '사재기'때문이기도 했다. 버스 요금이 오를 듯하면 토큰을 몇천 개씩 자루에 쓸어담아 사가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런 짓을 소용없게 하려고 당국은 은빛, 황동빛의 두 가지 토큰을 만들어 20여년간 교대로 쓰게 했다. 그러나 '긴 미래를 보고' 두뇌를 굴린 사람들은 오늘의 '구 토큰'이 다음 번 인상 땐 '신 토큰'이 될 것을 겨냥해 대량으로 사재기했다. 이걸 '토큰 투기'라고 불렀다. 토큰제가 폐짇ㅚ던 1999년 10월에도 회수되지 않은 토큰이 무려 6000만개나 됐다. 상당 부분이 트기용인 것으로 추정됐다. 역사 속으로 묻힌 것 같던 '토큰'이란 단어가 최근 뉴스에 다시 보인다. 모바일 결제 때 신용카드 번호 등을 가상 데이타로 바꿔 사용하는 방식을 '토큰화(token化)'라고 부른다. 현금 대신 냈던 버스 토큰처럼, 실제 카드 정보 대신 가상 데이터를 씀으로써 개인 정보를 보호한다고 한다. 골치덩이 튀급받다가 퇴출된 토큰이 디지털 공간에서 새롭게부활한 듯하다. (김명환 사료연구살장)
조선일보
2015년 9월30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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